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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교도소와 청송 경북북부제1교도소 법회에 『화엄경』 보현보살의 10대원을 통해 동체대비 실천행을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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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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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寶益生滿虛空(우보익생만허공) 

보배 비로 허공 가득 일체 중생 이익주네

衆生隨器得利益(중생수기득이익) 

중생들의 그릇 따라 온갖 이익 얻게 되니

是故行者還本際(시고행자환본제) 

이런고로 수행자는 근본으로 돌아가되

叵息妄想必不得(파식망상필부득) 

망상심을 쉬지 않고는 얻을 것이 하나없네


위의 게송은 포항교도소 3월 정기법회에 서두에 설한 내용으로 의상조사 법성게(法性偈)의 일부 게송으로 보배 같은 비가 허공에 가득 차 모든 중생들을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대자비의 혜택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베푼다는 의미이며, 또한 중생은 그 근기만큼만 이익을 얻는다는 뜻으로 받는 이의 마음의 준비와 태도에 따라 체감되는 이익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러한 법성게는 신라의 고승 의상(625∼702)이 깨달음의 경계와 법(法 )에 대하여 자리이타(自利利他) 수행에 관한 화엄일승의 핵심 사상을 7언 30구(총 210자)로 정리한 게송으로서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도해(圖解)한 것 일부를 옮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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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5일 포항교도소 정기법회에 포항교도소 추봉혁 교화팀장의 안내에 따라 불교분과위원회 종교위원의 대승불교 일불회 인연있는 성불사 정광스님, 용문사 청명스님, 극락사 해진스님, 송하사 거암스님, 천문사 도정스님, 무심암 도신스님과 함께하신 분들께서 준비한 공양물을 교도소 강당 불전에 올리며 함께 일심 동행하여 원만 회향하였으며, 또한 4월1일은 청송 경북북부제1교도소 법회에는 청송 대전사에서 매월 불전에 올릴 컵라면과 빵, 그리고 바나나를 준비해서 가는 길에 시간의 여유가 있어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국보 영양 산해리 소재 봉감모전5층 석탑에 예배하고 인연 있는 모든 분들께서 행복하길 우요삼잡(右遶三匝) 발원 잠시 참배하고 이동하여 사회복귀과 김성찬 교위와 채상준 교도의 안내에 따라 소승과 무심암 도신스님께서 동행하여 4월 첫째주 정기법회를 원만 회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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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 년 동안 매월 두 교도소에 정기법회를 보는 것은 전법도생(傳法度生)의 수행자 본분사를 다한다는 의미와 상대의 허물의 내 허물의 그림자임을 자각하고 반면교사(反面敎師)를 삼으며 또한 수행자 본분사(本分事)로서 불교의 세계관을 직관(直觀) 수형자 법우들에게 동체대비를 마음을 전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불교교학으로 화엄교학에 근거를 찾을 수 있는데 이 세계관을 인드라망(lndra)로서 구슬들이 서로서로 비추어 끝이 없는 것처럼 법계의 일체 현상도 끝없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연기한 것이어서 서로 간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설명한다. 인드라망의 비유는 법계의 일체 현상과 현상이 서로 방해함이 없이 교류하며 융합하는 세계라는 것이다.


인드라망은 범어로는(indrajāla)이다. 불교의 욕계(欲界)에 속한 천신(天神)들의 왕인 인드라, 즉 제석천이 머무는 궁전 위에 끝없이 펼쳐진 그물이다. 사방으로 끝없는 이 그물의 그물코에는 보배구슬이 달려 있고 어느 한 구슬은 다른 모든 구슬을 비추고 그 구슬은 동시에 다른 모든 구슬에 비춰지고, 나아가 그 구슬에 비춰진 다른 모든 구슬의 영상이 다시 다른 모든 구슬에 거듭 비춰지며 이러한 관계가 끝없이 중중무진으로 펼쳐진다. 이처럼 인드라망의 구슬들이 서로서로 비추어 끝이 없는 것처럼 법계의 일체 현상도 중중무진하게 관계를 맺으며 연기한 것이어서 서로 간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화엄교학에서는 이 세계의 실상을 설명한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에는 여러 곳에서 인다라망의 비유가 등장하는데 모두 이 세계, 즉 법계(法界)가 인다라망의 보배 구슬들과 같이 중중무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내용을 나타내기 위한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십행품(十行品)」에서는 십행 중 열 번째인 진실행(眞實行)에서 보살이 모든 부처님의 진실한 말을 성취하고는 여러 공덕을 얻게 되는데 그 가운데 여래의 십력(十力)을 얻고서 인다라망과 같은 법계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러한  『화엄경』의 핵심사상은 모든 현상이 서로 의존 연결되어 있고, 그 안에서 전체와 부분이 일체화 되는 ‘연기’와 ‘일체유심조’로서 인드라망과 같은 비유로 존재의 상호반영과 조화를 강조하며, 이를 통해 대립을 넘어 통합적 이해를 추구한다.


전통적으로 『화엄경』은 고타마 붓다가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한 직후에 '부처의 연꽃(佛華)'으로 상징되는 그 깨달음의 경지와 그것의 증득을 가능하게 하는 수행을 그대로 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렇게 믿어져 오고 있다. 『화엄경』 은 매우 웅대한 희곡적 구상과 유려한 서술로 법계(法界), 즉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즉 부처의 깨달음의 경지에서 보이는 우주, 즉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를 묘사하고 있으며, '진리의 연꽃[法華]의 경전'이라는 뜻의 『법화경(法華經)』 즉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과 함께 대승경전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라는 제목의 뜻은 '대방광불과 화엄에 대한 경전'으로, 대방광불은 크고[大] 바르고[方正] 넓은[廣] 진리 그 자체인 완전한 깨달음[佛] 또는 그것을 성취한 존재인 부처[佛]를 말하고, 화엄은 완전한 깨달음 즉 부처를 장엄[嚴]하는 연꽃[華] 즉 완전한 깨달음 즉 부처의 지위를 증득할 수 있게 하는 원인들과 그 원인들에 의해 성취되는 갖가지 공덕을 뜻한다. 따라서 '대방광불화엄경'은 불지(佛地)라는 과위(果位)와 그 인위(因位)에 대한 경전을 뜻한다.


 『화엄경』의 핵심은 보광명지(普光明智)를 드러내는데 그 중에서도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보현보살을 만나고, 보현보살의 「보현십대원」을 실천하는 구도이다. 선재동자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등장하는 구도자이다. 『대방광불화엄경』 「입법계품」 가운데 복성(福城) 동쪽 장엄당사라림(莊嚴幢娑羅林)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문수보살이 설하는 일체 불법(佛法)을 듣고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발심(發心)한 후, 문수보살의 권유에 따라서 남쪽으로 길을 떠나 여러 선지식(善知識)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해탈문을 듣고 마지막에 보현보살이 설하는 보현십대원으로 다함없이 회향하는 수행자이다. 보현보살십대원은 일체 부처를 공경·찬양하고, 공양·참회·수희·설법·회향 등 10가지 원을 실천하는 수행의 틀로 제시된다


 [보현보살십대원 普賢菩薩十大願]

첫째는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다〔예경제불원 禮敬諸佛願〕

둘째는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이다〔칭찬여래원 稱讚如來願〕

셋째는 널리 공양하는 것이다〔광수공양원 廣修供養願〕

넷째는 업장을 참회하는 것이다〔참회업장원 懺悔業障願〕

다섯째는 남이 짓는 공덕을 기뻐하는 것이다〔수의공덕원 隨喜功德願〕

여섯째는 설법하여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청전법륜원 請轉法輪願〕

일곱째는 부처님께 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하는 것이다〔청불주세원 請佛住世願〕

여덟째는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것이다〔상수불학원 常隨佛學願〕

아홉째는 항상 중생을 수순하는 것이다〔항순중생원 恒順衆生願〕

열째는 지은바 모든 공덕을 널리 회향하는 것이다〔보개회향원 普皆廻向願〕


그리하여 어떻게 예배하고 공경하며 내지 회향해야 하는지 묻는 선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보살이 이와 같이 그 닦은 공덕을 회향하니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도 보살의 이 회향은 다하지 아니하여 생각생각 상속하고 끊임이 없되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일에 지치거나 싫어하는 생각이 없다.


이〈보현행원품〉의 총결분에는 이 10가지 보현행원이 널리 구족하고 원만하게 하기 위한 말씀으로 되어 있다. 이 십대원은 원 중에 으뜸이라 하여 원왕(願王)으로 일컬어지며,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원왕을 수지독송하면 일체 장애가 없음이 마치 공중의 달이 구름 밖으로 나온 것 같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하여 마침내 생사에서 벗어나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되리라고 한다. 보현보살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원아임욕명종시(願我臨欲命終時) 

원하오니 이 목숨 다하려 할 때 

진제일체제장애(盡除一切諸障碍)

모든 업장 모든 장애 다 없어져서 

면견피불아미타(面見彼佛阿彌陀)

찰나중에 아미타불 친견하옵고 

즉득왕생안락찰(卽得往生安樂刹)

그 자리서 극락세계 얻어지이다. 


또한 〈보현행원품〉의 맨 마지막 게송 역시 위 내용과 맥락을 같이 하여  회향할 때 널리 염송되어지는 게송이다.


아차보현수승행(我此普賢殊勝行) 내가 지은 수승하온 보현행의 

무변승복개회향(無邊勝福皆廻向) 가없는 수승한 복 회향하오니 

보원침익제중생(普願沈溺諸衆生) 바라건대 고해중의 모든 중생이 

속왕무량광불찰(速往無量光佛刹) 속히 무량광불찰에 왕생하여지이다. 


위의 보현보살 10대원은 『화엄경』 「보현행원품」이란 「입법계품」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나 좁게는 40권『화엄경』에 있는 보현보살의 10종 행원 부분만 가르킨다. 보현보살이 부처님의 수승한 공덕을 찬탄하고 나서 모든 보살과 선재동자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의 공덕은 가령 시방에 계시는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불가설 불가설 불찰극미진수겁을 지내면서 계속 말씀하시더라도 다 말씀하지 못하시느니라. 만약 이러한 공덕문을 성취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10가지 넓고 큰 행원을 닦아야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화엄경은 부처님이 성도하신 후 삼칠일 동안 설하신 경전으로 불교 사상의 최정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난해하여 보편적으로 읽혀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연유로 화엄사상을 요약하는 게송이나 일부 품(品)이 별행본(別行本) 형태로 널리 유포되었는데, 의상대사의 법성게나 용수보살의 약찬게, 그리고 지금 말씀드리는 ‘보현행원품'은 그 대표적 예라 하겠다. 보현행원품은 화엄경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말씀으로, 선지식을 찾아 구도 여행을 마친 선재 동자가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만나 열 가지 보현행원에 대한 구체적 가르침을 받는 내용입니다.


화엄경의 사상은 보현행원 열 가지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방대한 화엄 사상이 보현행원품에 축약되어 있으며, 부족한 사바의 예토(穢土)가 화려하고 장엄한 화엄법계로 바뀌는 것은 바로 보현보살의 원력과 열 가지 행원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중생을 공경하고 칭찬하며 섬기는 그 원행이, 온갖 갈등과 대립이 끊일 날 없는 이 사바 세계를 화엄의 장엄한 정토로 바꾸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보현행원품」은 처음에 문수보살을 만남으로써 시작한 선재 동자의 구도행은 보현보살을 만남으로써 마침내 그 길고긴 여정을 끝내게 된다. 보현보살은 선재동자에게 부처님의 공덕은 모든 세계 모든 부처님이 미래세가 다하도록 말하여도 그 공덕을 다 말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크다는 것을 설한 후, 그런 부처님 공덕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보현의 열 가지 행원을 닦으라고 말씀하신다.


위와 같이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을 닦는 것은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내 괴로움처럼 보고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으로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는 대자비(大慈悲)의 발로이다. 동체대비는 모든 중생이 겪는 괴로움을 내 괴로움으로 삼는 자비를 말하며, 이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한 몸이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해 남으로 여기고 편을 가르는 잘못된 견해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설명된다. 


또 다른 표현은 상대가 나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곧 자신의 몸에 자비를 베푸는 것으로 타인의 아품을 공감하고 나의 아픔처럼 보듬을 때 진정으로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의 네 가지 마음으로, 남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자(慈), 남의 괴로움을 덜어 주려는 비(悲), 남이 괴로움을 떠나 즐거움을 얻으면 기뻐하는 희(喜), 남을 평등하게 대하려는 사(捨)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으로 오늘도 수행자 본분사를 다하면서 영덕 태생 고려말 고승 나옹선사께서 윤시중(尹侍中)집에 잠깐 들렀을 때 준 활구(活句)를 송(頌)하면서 회향하고자 한다.


暫到侍中尹宅贈之(잠도시중윤택증지) 

윤시중(尹侍中)의 집에 잠깐 들렀을 때 준 글

夙有良綠到此閒(숙유랑록도차한) 

지난날 좋은 인연 있어 여기 왔나니

家門肅靜好心安(가문숙정호심안) 

온 집이 엄숙하고 고요해 마음이 편안하고

又遊花苑人家遠(우유화원인가원) 

노니는 꽃동산은 인가에서 머나니

恰似深山山裏山(흡사심산산리산) 

깊은 산, 산속의 산과 같네


교정협의회 중앙회 불교분과위원장 서남사 주지 철학박사 覺呑 현담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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